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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면 지명유래
지리 | 지리마을 마을 뒷산은 매봉산으로서 매의 양쪽 날개가 뻗어 내려온 끝에 마을을 형성하였으며, 매봉산에 지초약이 자생되어 마을 이름을 지곡리라 했고 일제때 개칭하여 지리마을이라 부른다. 마을위에 있는 저수지는 본 면에서 저수량이 가장 많으며 낚시터로 유명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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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 | 현정마을 마을의 형태가 학의 터로서 "학이 천년을 살면 검어진다"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자손들이 백대천손을 누리기를 기원하는 뜻으로 "검징이"라 부르기도 하였으며 , 유적으로는 현정리사지 석불입상, 영귀서원이 있다. 현재 현정교옆 왕버들은 주민들의 쉼터로 이용되고 있다. |
심정 | 심정마을 면 소재지 서쪽에 자리잡고 있는 심정마을은 약 200여년전 태인인 허씨와 고령인 신씨가 정착하여 7대에 이르고 150여년전 전주이씨에 이어 창녕조씨와 안동권씨가 입주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는데 입향조들이 터를 닦을 당시 물맛이 좋고 맑은 물을 찾았다하여 수정이라 했으며, 일제말에 심정으로 개칭하였다. |
가정 | 가정마을 마을 형국이 개형국으로 되어있고 왕버들 당산나무가 상하로 조화를 이루고 있어 개의 입과 꼬리에 해당되어 "개정자"라 속칭하다가 1914년에 가정으로 명명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마을어귀에 입향시조가 심었다는 상·하 느티나무 위는 할아버지 당산나무요 아래는 할머니 당산나무로 부르는데 옛날 도적이 침범하여도 훔친 물건은 가져가지 못하고 나무밑을 헤매다 날이 밝았다하여 부락의 수호신으로 모시며 정월대보름이면 지금도 마을 주민들이 당산제를 지낸다. |
평장 | 평장마을 마을 뒷산의 형국이 용모양으로서 용주산이라 하고 마을은 용의 목에 해당된다하여 향촌이라 속칭하여 전해 내려오다가 행정구역 개편시 마을이 평평한 곳에 있다하여 평장이라 개칭하였다. 옛날 들 가운데 소나무 정자가 있어서 "쇠징이"란 들명이 붙여져 내려오고 있다. |
원평 | 원평마을 마을터가 매봉산 밑에 자리하여 처음에 은산촌이라 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원평리라 개칭하였다. 평장 서남쪽에는 북당굴이 있으며, 동쪽에 있는 등성이를 "진등"이라 하는데 진등남쪽에 옛날 사기점터가 있었다고 한다. |
마전 | 약 600여년전 정지장군이 수천명의 왜적을 무찌르고 마전리 절골에 와서 말을 메어놓고 쉬면서 마전리터의 형세를 보니 말과 같으며 마을 중심으로 흐르는 물에 말의 목을 축이고 난 후 적장의 목을 베어 난을 평정하고 얼마 후 총 참모장으로 승진한 공을 기리어 말의 "마"자를 따서 마전리라고 이름하였다고 전하며 경사가 완만한 야산을 개간하여 담배를 많이 재배하고 있다. |
산정 | 산정리는 본래 창평군에 속해 있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등동을 병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마을앞에 장파봉이라는 산이 있고 그 산정에 묘를 쓰면 가뭄이 든다는 전설에 따라 가뭄이 들때면 마을 전 주민이 삽과 괭이로 묘를 파서 가뭄을 해소했다는 전설이 있다. 산정마을에는 효자, 열녀가 많았는데 산정등골에 효열박씨양세적비를 비롯하여 열녀김해김씨려, 효열부밀양박씨비, 효자최공효부경주김씨기행비 등이 있다. |
상덕 | 상덕마을 겸면 주봉인 장파봉의 품안에 자리잡은 마을로 양지 편에 위치하여 제일 먼저 해가 뜨고 추운 겨울에도 온기가 가시지 않아 매화나무가 무성했다하여 덕매라 하였으나 1914년 상덕으로 개칭 현재에 이르고 있다. 상덕마을에는 도둑을 잡았다는 석장승이 마을 어귀에 자리잡고 있다. |
회화 | 회화마을 마을 어귀에 마을의 역사와 연륜을 같이한 커다란 회나무가 3그루 있는데 그 향기가 온 마을에 가득하여 경사가 끊이지 않아 회화리라 칭했다. 회화리도 효자, 열녀가 많았는데 그들이 공적을 기리기 위해 많이 비를 세웠다. 그중 현존하는 비로 열녀초계정씨비, 효열 창녕조씨비, 효자김국현려, 효자김재달려, 효자정달명비등이 있다. |
괴정 | 괴정마을 마을의 상징인 40여년 묵은 느티나무가 마을뒤에 자생하고 있어 괴정리라 함, 괴정리와 초곡리의 중간시점에 초곡제가 있는데 옛날 실연당한 처녀가 투신자살 원혼이 되어 사람(특히 총각)을 놀라게 하고 해한다는데 이곳을 지나려면 반드시 소변을 보고 지나가야 화를 입지 않는다고 전해지고 있다. |
초곡 | 초곡마을 동악산 준령이 해발 250M의 심산유곡에 형성되어 수목이 무성하며, 산새들이 많이 서식하고 있어 초곡이라 하였으며, 마을 형태가 엎질러진 항아리 같아서 재물이 흘러가고 도둑이 드나들 것으로 보아 이를 막기위해 탑을 쌓았다고 한다. |
신흥 | 신흥마을 당초에는 소룡리라 하였으나 마을이 흥성하게 일어나므로 더욱더 마을 발전을 위해 신흥리라 하였다. 소롱굴이라는 유래는 마을 뒷산에서 용이 노는 것을 보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흥복 | 흥복마을 본 마을은 약100여년전에 형성되어 상업으로 생활하였으며 교통이 편리하고 호수가 많아지면서 마을이 부흥하라는 뜻으로 "흥복"이라 하였다. |
대명 | 대명마을 마을 옆에는 피봉이 있고 뒷동산은 마을을 호위하면서 궁형을 지었고 마을 앞들에 활끈 형국을 한 강이 흐르며, 앞뜰에 서 있는 입석은 화살로서 완전한 궁체로 되어 경향각지에 이 마을이 크게 울렸다하여 대명동이라 하였으며 1914년에 대명으로 개칭하였다. |
백운 | 백운마을 마을뒤로 하늘을 가린다는 차일봉이 있고 그 높은 품속에 위치한 고산지대로써 상스러운 흰구름이 끓임없이 감돈다하여 백운동이라 부르고 있다. |
송강 | 송강마을 고려 보조국사가 절터를 잡기위해 3개의 화살을 쏘았는데, 하나는 순천 송광사에 또 하나는 해남 대흥사에 나머지 하나가 이 마을에 떨어져 주위를 살펴본 결과 이 앞으로 넓은 길이 생길 것 같아 사찰을 세우지 않았는데, 현재 이 마을 앞으로 호남고속도로가 관통하고 있다. 송광사의 "송"자와 마을 앞으로 맑은 물이 흐른다하여 "강"자를 붙어 "송강"이라 칭하게 되었다 한다. |
대흥 | 대흥마을 장시헌씨가 경북인동에서 살다가 명산대천을 찾아다니다가 이곳에 정착하게 되어 현재 21대에 이르며 마을 대종을 이루고 있음. |
운교 | 운교마을 옛날에 칠봉과 하느재를 잇는 높고 커다란 구름다리 같은 것이 있으므로 마을 이름을 운교라고 명명 하였는데 마을 앞 냇가에 있는 거북바위는 옛날 거북 한쌍이 살다가 수컷이 뭍사람들에게 잡혀 돌아오지 않자 암컷이 애타게 기다리다 죽어 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바위가 거북 모양에 기다리는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한다. |
죽산 | 죽산마을 마을 동산에 죽림이 무성하고 주위의 고산대봉에 대나무가 울창하여 죽산이라 칭함 마을앞에 큰 정자나무가 있는데 마을의 평안과 그해의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매년 정월 대보름때면 제를 지냈는데 이 정자나무는 하늘의 선녀가 내려와 심었다고 전해져오고 있다. 현재 마재 마을 뒷산에 사과재배 단지가 형성되어 있어 주민의 주소득원이 되고 있음 |
칠봉 | 마을 뒷산의 산봉우리 7개가 우뚝우뚝 봉우리져 있다하여 칠봉이라 함 칠봉마을은 정조2년(1779년)에 참봉 심채진이 대명리에서 칠봉리로 이주 정자를 지어 선비들이 모여 음풍농월을 즐겼다는 대환정과 천연정이 있으며 현재는 노인정으로 사용하고 있다. 옛날 칠봉리는 "파시"로 유명했는데 임금님의 진상품 이였다 하는데 현재 그 명성이 사라져 가는 점을 아쉽게 생각하며, 칠봉 파시 되살리기 운동을 전개중이다. |
남양 | 겸면의 진산인 장파봉의 품안에 자리하고 있으며 정남을 향해 사철 햇볕이 끊이지 않았다하여 남양리라 부른다. 남양리 신택지터 밑 부근을 천석군이 날 터라 구전되었는데 후일 그 자리에 농협창고가 건립되어 전설이 현실화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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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수정일 2019-08-22